제목 유기농 원로를 찾아서 3-강제석(전남 무안)
작성일자 2015-07-07
조회수 2609
 
 
 


 
 
 전국적으로 양파와 양배추의 주산지이며, 일조가 가장 으뜸인 지역으로 유명한 무안.
이 곳에서 친환경농업을 위해 묵묵히 등대처럼 빛을 비추는 등대영농조합법인 강제석 대표를 만나보았다. 빚으로 시작한 농업에서 빛을 비추는 등대가 되기까지 다사다난했던 강대표의 친환경 인생을 들어보았다.
버섯농사에서, 배농사, 친환경급식사업, 현재는 로컬푸드 매장까지 수없는 고난과 좌절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지금의 성공이 있기까지 끝까지 버텨온 그만의 삶과 농업의 노하우를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았다.  
 
 
강제석 대표가 전하는 유기농업비법!
 
 
1. 4~5년에 한번씩 평당 숯 1kg씩 토양에 뿌려준다. 숯은 토양을 정화시키는 기능과 동시에 미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2. 경반층이 단단하게 굳은 땅에는 호밀을 심는다. 호밀은 뿌리가 2m까지 뻗어내려가기 때문에 경반층을 뚫어 토양의 심층까지 공기와 수분이 원활하게 순환되도록 도와준다.
 
3. 유기농자재의 무분별한 사용을 줄인다. 현재 토양은 사람으로 치면 비만상태이다. 자신의 땅을 정확하게 진단한 다음 내 토양에 알맞은 양의 퇴비와 유기농자재를 사용한다.
 
4. 미생물을 배양하여 자주 관수한다. 토양의 미생물은 흙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여 병해충을 방지하고 식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물을 건강하게 한다.
 
5. 4~5년에 한번 정도 휴경을 실시한다.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년생 작물과 초생재배를 통해서 유기물을 확보하고 토양이 스스로 회복 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6. 해초를 배양해서 액비로 활용한다. 해조류는 탄수화물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천연식물 호르몬과 다양한 비타민, 영양소들이 들어있어 식물이 생장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 농사를 짓게 된 계기는?
원래 미대를 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1987년에 무안으로 내려와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빚을 내서 50평의 땅으로 느타리버섯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 50평 농사로 어떻게...
그 당시 돈도 없고 힘도 없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고 쉽게,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적은 땅에서 가장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작물이 버섯이었다.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폐교의 삼나무 목재를 주워와 버섯재배시설을 만들고 폐차에서 라디에이터를 뜯어와 난방장치로 사용했다.  갈대로 발을 짜서 타이머를 설치해 자동개폐시설을 만들어 온도를 조절하고 관수용 노즐에 구멍을 뚫어 물이 한방울씩 떨어지도록 설치해 습도를 맞추었다.  그리고 600페이지 분량의 버섯재배서적을 구입해 아내와 같이 하루에 열페이지씩 찢어서 일하는 중간에 공부하며 농사를 지었다.
 
▣ 버섯농사의 또 다른 대박 비결이라도
그 당시 버섯농가들이 대부분 망했다. 버섯의 출하시기가 한 시기에 몰려있어 폭발적으로 물량이 나와 제 값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기를 잘 이용했다.  한참 물량이 나올 때는 휴경을 하고 버섯출하시기가 끝나 버섯가격이 좋을 때 작물을 재배해서 높은 가격에 팔았다. 버섯 재배 기술도 중요하지만 유통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친환경농업을 중도에 포기하신 적이 있다고 하시던데
버섯농사로 돈을 모아 조금씩 땅을 샀다. 그리고 배나무를 심었다. 그 당시 일본 유기농연수를 받고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유기농 배 재배에 도전했다. 하지만 1993년도에 말 그대로 완전 망했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유기농업을 포기하고 농약을 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행농업을 하면서 많은 자괴감이 들게 되고 오랜 신념이 깨지자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농약을 치기 시작하니까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아, 이건 아니구나 싶어서 새로 유기농업에 뛰어들었다. 그 뒤론 실패를 해도 유기농업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  
 
▣ 실패를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유기농업을 하기에는 내 땅이 전혀 준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유기농업의 핵심은 토양이다.  토양은 25%의 기체(공기), 25%의 액체(물), 50%의 고체(흙, 모래, 자갈, 유기물 등)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가지가 골고루 분포되지 않으면 좋은 땅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땅이 기계로 눌려 경반층이 단단히 굳어있어 뿌리가 깊숙이 박히지 못하고 표토 주변에 몰려 있다. 그래서 물도 공기도 제대로 순환되지 않아 작물들이 병약해진다.  그리고 유기농업이라 해서 유기물만 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토양 생태계를 이해해야 된다. 토양 속에는 유기물이 있고 이를 먹고 사는 토양 미생물, 곤충, 세균 등등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며 식물들과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 토양을 만드는 특별한 기술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기술보다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작물도 토양도 사람도 똑같다. 좋은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쉬면 아플 일이 없다.  첫 번째로 4~5년에 한번씩 숯을 평당 1kg씩 넣어 준다. 두 번째 퇴비를 적당히 넣어 주고 해초를 배양해서 액비로 뿌려준다. 세 번째 미생물을 자주 뿌려 토양내 미생물 개체수를 늘린다.  호밀을 심어서 경반층을 뚫어준다. 그래야 공기와 물의 순환이 잘 된다. 그리고 4년에 한번 꼴로 휴경을 한다. 땅도 가끔 쉬면서 지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 농민에게 휴경이란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텐데
대부분 휴경을 하라고 하면 아무것도 심지 않고 빈땅으로 둔다고 생각을 한다. 나는 휴경지에 꾸찌뽕을 심어서 초생재배를 한 뒤에 4년뒤에 뿌리채 뽑아서 약재상에 판매한다.  토양의 지력을 올리면서 돈도 벌 수 있다. 잡초는 꽃이 필 때 쯤 잘라서 분쇄해 유기물로 사용한다. 휴경이라던지 잡초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 현재 친환경농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요즘처럼 양파수확 시기가 되면 한사람 인건비가 15만원이 훌쩍 뛰어 넘는다.  그래서 사람 손을 최대한 적게 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인공수정이 아닌 100% 자연수정을 고집한다. 자연수정을 하게되면 골고루 수정이 되지 않아 배가 울퉁불퉁해진다.  그래서 공판장에 낼 때는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맛으로 승부하여 직거래를 하는 편이다. 먹어본 사람은 고정고객이 되니까 판로에 큰 걱정은 없다.  
 
▣ 직거래 뿐만 아니라 유통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친환경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판로를 구축해야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친환경급식이었다.  2002년부터 시작했지만 실질적으로는 2004년 12월부터 실행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친환경급식이 이슈였다. 그때 무안 군수를 찾아가 무안에서 처음으로 친환경급식을 주도하자고 설득했다.  어렵게 1달동안 시범사업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전국 최초 친환경급식을 한 첫 사례가 되었다. 물론 처음이라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결국 ‘제초제 없는 무안군’을 만드는데 큰 힘이 되었다.
 
▣ 유통사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친환경급식의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 당시 결제방법이 군에서 학교에 지원금을 주면 학교 측에서 농산물 결재대금을 지불했다.  이런 시스템은 학교교장의 리베이트 문제를 야기시켰다. 그래서 군수를 찾아가 군과 농민이 직접 거래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군수를 설득시켰다.  결국 이 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좀 더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서울에 양파를 납품할 때 역시 발생했다. 중간 유통업체에서의 비리가 만연해 농민들이 이유 없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했다. 중간업체의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친환경농업 시장이 신뢰받고 살아날 것이라 생각한다.   
 
▣ 과수를 많이 하시는데 저농약폐지에 대한 의견은?
그루터기농장에는 유기농, 무농약, 저농약 과일이 모두 공존한다. 헌데 내 경험 상으로 유기농 노지과수는 10년이 넘어가니 병해충에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환경이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산성비에 노출되면서 작물의 면역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 같다.  시설과수는 어느 정도 유기농이 가능하지만 노지과수는 유기농, 무농약이 상당히 어렵다. 노지 과수는 저농약도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또 목표가 있다면? 최종목표는 없다. 그저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이 목표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후계농을 육성하는 것은 내 의무라고 생각한다.  농업이 망가지면 국가가 망하는 길이다. 정부도 국가도 농업에 관심이 없다. 농민들 스스로가 그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농업이 웃을 수 있는 날을 위해 한그루의 그루터기가 되어 새싹을 틔우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후계자들과 귀농귀촌인들을 제대로 육성해야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은 고정관념이 없고 바닥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다.  따라서 협회가 이들을 대상으로 코칭해주는 멘토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비전이 있고 누구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한다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 용기를 가지고 농업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많아 지길 바란다.   
 
인터뷰를 마치고 먹어본 강대표의 배는 아삭아삭한 식감 뿐 아니라 맛도 일품이었다. 친환경농업을 시작하면서 살아왔던 그의 굴곡진 30년의 삶이 울퉁불퉁한 친환경 배에 녹아 있었다.  강대표의 말처럼 유기농업인들이 웃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새싹이 올라오도록 기다리는 그루터기처럼 묵묵히 그날을 기다려본다.  
 
<본 내용은 본회 회보 2015년 7월호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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