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유기농 원로를 찾아서 4-이해극(충북 제천)
작성일자 201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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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농사의 흥망성쇠는 재천(在天)이야, 그거 깨우치려면 제천(堤川)으로 와”

조상 대대로 400년을 충북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에 살아온 이해극 대표는 흙이 좋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새벽 5시 해가뜨고 별이 뜰 때 까지 농사를 지어도 작물들만 보고 있으면 힘든 것도 모르고 배가 부르다며 넉넉한 웃음을 건넨다.
 
현재 강원도 평창 미탄면 600마지기 농장에서 무, 상추, 샐러리 등을 재배하며 신명나게 농사를 짓고 있다. 이해극 대표의 삶과 유기농업에 대한 열정을 보기 위해 600마지기 농장으로 직접 찾아갔다.
 
이해극 대표가 전하는 유기농업비법!
 
1. 자신의 농장환경에 대해 이해해야한다. 기상기후는 어떤지, 토양의 상태는 어떤지 꿰뚫어보고 있어야한다. 농장의 생태계를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2. 잡초와의 전쟁이 아닌 잡초와의 공생을 추구한다. 특히 헛고랑에서 자라는 잡초는 뽑지 않고 일정부분 자랐을 때 제초하여 토양의 유기물 함량을 높이는데 사용한다. 이를 통해 장마나 태풍으로 인한 토양의 유실을 막고 영양분 용탈을 잡아준다.
 
3. 녹비작물로 호밀을 심는다. 호밀은 추위에 견디는 힘이 강해서 -25℃이하에서도 재배가 가능하고 척박한 조건에서도 잘자란다. 특히 C/N 율이 높고 뿌리가 깊게 박혀 토양 미생물들이 살기 좋은 조건으로 만들어 준다. 또한 헛골에 호밀을 뿌려주면 잡초를 어느정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4. 2년에 한번씩 박달재에서 나온 부엽토와 낙엽, 쌀겨, 무항생제 우분을 활용하여 퇴비를 만들어 사용한다. 퇴비에는 부엽토에서 발생한 토양 고유의 미생물들과 유기물이 많아 토양의 떼알구조 형성을 돕는다.  
 
5. 적절한 윤작을 통해 기지현상을 피한다. 같은 과 식물, 즉 십자화과를 심었던 땅에는 화본과나 국화과 등으로 작물을 변경해서 심는다. 토양관리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윤작을 하지 않으면 병해충 피해는 물론이고 양분의 불균형성으로 작물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 고추 증산왕 이해극
1952년 제천에서 태어난 이해극 대표는 1973년 제대 후 농업에 뛰어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흙과 농사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국농업의 목표는 농산물 증산이었다. 다들 먹을 것이 귀했고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 대표 역시 증산을 위해 비료를 사용한 재배기술에만 몰두 했다.

하지만 비료의 약효는 초반에만 잠시 빛을 본 뒤 병해충의 잇따른 습격으로 오히려 수확량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때 우연히 전국농업기술자협회에서 ‘병든 대지(大地)를 소생(蘇生)시키는 길’이란 도서를 구매하면서 유기농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 대표는 이 책에서 두가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첫째, 흙은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자연 그자체이기 때문에 농업을 짓는다 함은 자연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안전하지 못한 농산물을 아무리 많이 증산해봐야 그것은 애국이 아니라는 점 이었다.
“40년전 일본의 도시주부 모유(母乳)에서 농촌주부에 비해 10배나 높은 농약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자책감으로 한동안 방황했었다.”

이후 그는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농산물만 을 재배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유기농업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과학보다는 자연의 이치를, 비료보다는 흙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고민하였고 그 결과는 1985년 전국 고추증산왕이라는 타이틀로 돌아왔다. 관행농업보다 350%의 증수로 유기농업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증명한 셈이다.
 
■ 600마지기, 열정으로 도전하다
이 대표는 화학농약으로 범벅된 땅을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괴롭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유기농업으로 성공해 후배 농업인들에게 직접 결과를 보여주는 방법, 그것이 진정한 유기농업운동이며 농민이 가야할 길이라 생각했다.

600마지기 농장을 방문했던 일부 농민, 귀농인들은 현재 그의 성공스토리에 반해 유기농업의 길로 가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공 뒤에 숨겨진 실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강원도 정선 해발고지 1,200m, 퇴비조차 올릴 수 없었던 험난한 흙길을, 차를 타고 30분이 넘도록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 그곳은 1990년 이 대표가 처음 올라갔을 때만 해도 황무지였다.
화학농약과 비료에 절어있던 농장에서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흙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호밀을 심고 갈며 흙 만들기에 온 열정을 쏟아 부었지만 내리 3년을 망했다.

이처럼 파괴된 자연을 복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버텨야만 했다. 3년도 버티지 못하고 포기했던 이전의 관행농사꾼과는 달라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1994년 유기농업 1호 농장으로 지정을 받은 후 지금껏 그 흔한 농약 한번 없이 유기농업의 유토피아 600마지기 농장을 일구었다.
“안되면 되게 하고, 그래도 안되면 죽을 때 까지 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했던가. 그렇게 이 대표는 산을 옮겨버렸다.
 
■ 농업이 가야할 길, 농도(農道)
이렇게 농사에 날고 기는 이 대표이지만 농업에 대한 신념은 있다. “농사꾼은 농사를 짓고, 상인은 장사를 하고, 소비자는 농산물을 구매해서 먹으면 된다.” 어찌 들으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재 국가정책의 방향은 농민이 농사짓고, 유통하고 서비스도 제공하는 6차농업으로 가는 것이다. 고령화로 치닫는 한국농업에서 일부 젊은 귀농인에게나 해당될 뿐이다. 

한평생 농업에만 미쳤고 아직도 공부하는 이 대표 역시 농업을 아직 잘 모른다고 한다. 농업은 자연의 이치를 알아가는 것이기에 무궁무진하며 어제 잘 되었다고 오늘 잘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농사만 마음 놓고 지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라고 단정하는 이 대표는 친환경농업 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저농약 인증을 친환경농업에서 제외하는 것은 친환경농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저농약 역시 토양의 악영향을 끼치는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최소한의 농약과 비료만을 사용함으로 이 역시 관행농업에 비해 훨씬 더 안전하고 환경기여도가 높다는 주장이다. 그는 친환경농업 역시 농민의 기술과 실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무농약 이상의 재배, 특히 과수는 기술 뿐만 아니라 토양과 기후가 받쳐줘야 가능하다. 따라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농약 폐지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뛰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름없다.”

이 대표는 친환경농업 발전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직불금의 퇴비화, 즉 직불금을 현금 대신 고급퇴비로 농민들에게 준다는 것이다.
현재 농민들의 다수는 토지를 임대하여 사용하며 계약 역시 불분명해 직불금이 농민에게 가지 않고 부재지주에게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퇴비는 도시에 있는 부재지주에게 필요없기 때문에 당연히 농민들에게 갈 수 밖에 없다. 또한 고급퇴비는 남아도는 농축산 폐기물을 자원화하여 사용하기에 환경에도 좋고 토양도 가꿀 수 있어 농업인에게도 좋다. 이렇게 토양관리부터 제대로 해서 안전한 농산물을 많이 만들어 내야 국민건강에도 이바지 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이다.”
 
■ 친환경농업은 창조농업
전국은 창조열풍으로 들썩이고 있다. 창조경제에서부터 시작해 ‘창조과학’, ‘창조건축’에 이어 ‘창조농업’까지 창조바람이 거세다. 그렇다면 창조농업은 무엇인가?

“사고를 통한 창의적 발상과 열정을 통해 기존의 농업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
이 대표는 친환경농업이야 말로 이러한 조건을 갖춘 창조농업이라고 말한다.

많은 대기업과 농민들이 한국농업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해외농업기지건설을 주장하며 해외로 떠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과는 실패이다. 각국의 자연환경, 법규, 정치사항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그래서 북한농업, ‘통일농업’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매년 북한은 수십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고, 한국은 넘처나는 가축분을 처리할 수 없어 고민이다. 이 가축분을 고급 퇴비로 만들어 북한에 주면 북한과 한국의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지리적으로 도 최적의 조건이다.”
이 대표는 한국의 자본과 기술력에 북한의 노동력과 땅을 합치면 농업강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만주와 연해주 등의 넓은 땅을 임대하여 농업을 한다면 네덜란드와 일본 등의 농업강국도 충분히 압도 할 수 있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이를 통해 농업의 발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 식량안보 강화로 국가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농약과 화학물질이 전혀 닿지 않은 북한은 친환경농업을 하기에 최적의 지역이다.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증가하는 현 시점에서 북한 전 농토를 친환경농업으로 만든다면 중국과 세계시장에서 한국농산물의 위력을 과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큰 틀에서 크게 생각하고 농업을 봐야한다. 창조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 소비자와 농민이 공감하는 그날까지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식량 자급율 49.8%, 사료를 더한 곡물 자급율은 24%에 불구하다.
이 대표는 농업은 이미 망했다고 단언한다. 그는 한국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 여러 대안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국민과의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농민과 소비자 간의 교감이 절실하다. 현재 농업의 위기가 국가안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는 소비자는 드물다.
또한 외국에서 수입되는 많은 농산물들은 장기간의 저장을 위해 수많은 농약으로 범벅되어 있으며 한국이 GMO 수입 1위 국가라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연간 국민들은 100조가 넘는 돈을 병원에 헌납하지만 그들이 아픈 이유가 음식과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히포크라테스 조차도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병든 어머니가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없듯 화학제품으로 얼룩진 토양에서 좋은 농산물이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이 대표는 친환경농업만이 국민의 건강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젠가 벌레 먹은 배추로 김장하는 그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농사꾼 이 대표는 한국의 농업이, 그리고 친환경농업이 살아나길 꿈꾸며 오늘도 600마지기 농장을 지키고 있다. 전국민이 친환경농업을 공감하는 그날을 꿈꾸며.
<본 내용은 8월호 '자연과 건강'회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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