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유기농 원로를 찾아서 2-이정모(경기도 여주)
작성일자 201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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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대표가 전하는 유기농업비법!
 
1. 비료투입을 최소한으로 한다. 특히 질소비료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 쌀 속에 조단백 함량이 높아져서 쌀맛이 떨어진다. 따라서 비료 의존도를 낮추고 토양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2. 쌀이 100%로 익기 전에 수확해야 한다. 옛말에 ‘풋배타작한 벼가 맛있다.’라는 이야기가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쌀이 약 90% 정도 익었을 때, 즉 벼 이삭이 다 노랗게 익기전에 수확해야 한다.
 
3. 수량이 아닌 품질로 승부한다. 이제 더이상 값싼 농산물은 비전이 없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저품질 농산물에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맛과 품질로 소비자들을 감동시켜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4. 영농일지를 거르지 않고 꼼꼼히 작성한다. 기록을 게을리하면 실패를 반복하게 되고 좋은 기술은 잊혀지게 된다. 영농일지를 활용할 때 가능하면 사진도 첨가하여 다음에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작성한다.
 
5. 자연의 힘을 최대한으로 활용한다. 작물간 이격거리를 넓혀 바람과 태양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게 한다.
 
 
 
Q: 농사를 짓게 된 계기는
여주농고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왔는데 대부분의 동기들이 그 당시에 제약회사에 취직을 했었다.
나도 제약회사에 취직할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회사생활 하느니 차라리 농사를 짓는 것이 더 비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966년부터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Q: 언제부터 유기농업을 하셨나요?
내가 처음 농사를 지을 당시만 해도 친환경, 유기농업이란 단어조차 없을 시기였다. 비료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이라 나도 비료를 받아서 사용하고 화학제품도 사용했다. 처음에 비료를 사용하니까 작물들이 너무 잘 자라서 신나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Q: 그럼 유기농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화학비료를 처음 사용 할 때는 작물들이 쑥쑥 잘 자라더니 어느 순간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물들이 병충해에 픽픽 쓰러지기도 하고 수량도 어느 순간 늘지를 않더라. 한 지인에게 소화효소라는 것을 추천받아서 사용하기 시작했더니 다시 작물들이 쑥쑥 잘 자랐다.
아마 그게 미생물 발효제라고 생각된다. 이때 딱 들던 생각이 화학비료(N,P,K)만으로는 농사짓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공부도 많이 해보고 농업강의가 있다고 하면 어디든 찾아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건국대에서 정진영 회장의 강의를 듣고 어렴풋이 유기농업에 관한 밑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
 
Q: 농약중독으로 쓰러지셨다고 들었는데
젊을 땐 밤낮, 더위, 추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한여름에 밭에 들어가서 비료도 주고 농약도 치고 쉴 틈 없이 일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농약에 취해서 몇 번이고 위험한 고비를 겪었다. 그래도 농약 해독제를 먹어가면서 일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나보다 집사람이 아프기 시작했다.
밭에 나와 일하면서 하혈을 계속하기 시작한거다. 대수롭지 않겠거니 했는데 하루하루 병이 심각해져서 결국 기독교 병원을 갔다. 그랬더니 자궁근종이라고 얼른 수술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렇게 망연자실 하고 있는데 예전에 협회 정기교육에서 전홍준 박사의 ‘자연건강과 유기농업’ 강의가 생각이 났다. 무작정 안사람을 데리고 전홍준 박사를 찾아 갔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농약을 멀리하고 친환경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먹고 꾸준히 운동을 했더니 6개월 지나니까 완치가 되었다.
그때 깨달았지 ‘깨끗한 주변환경을 만들고 좋은 음식먹고 자연 그대로 생활하니까 병이 낫는구나.’
 
Q: 처음 유기농업을 시작할 때 힘드셨을텐데
80년 중반쯤부터 유기농업 기술을 몇 개 배워서 직접 해봤다. 처음에는 축분, 왕겨 만 섞어서 많이 뿌려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밭 2500평에 트럭으로 왕겨 8차, 축분 8차를 실고와서 땅에 뿌리고 비닐로 다 덮어놨다.
제대로 발효도 안 된 상태에서 배추를 심었더니 선충 때문에 병이 걸려서 엉망이 되버렸다.
그래서 그 당시 농촌지도소에 배추를 들고 갔더니 ‘모캡’이라는 농약을 뿌리라고 하더라. 농약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서 협회를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엔자임’이랑 ‘보릿돌뜸씨’를 추천해 줬다. 그 당시는 기계가 제대로 나온 시대가 아니여서 집에 있는 아이들까지 합세해서 가족모두 손에 주전자를 들고 배추포기 하나씩 하나씩 약을 줬다.
그래도 도저히 2500평을 다 주진 못하겠더라.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신기하게 약을 준 곳은 배추가 살아나고 안 준 곳은 다 죽어버리더라고. 그때 유기농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Q: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요?
처음 시작하면서 상당히 기술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면서 실수도 하고 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것들이 하나하나 노하우가 되어서 뼈가 되고 살이 되었어. 그리고 협회에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연락도 해서 궁금할 때 마다 물어봤다. 그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역시 가장 힘들 때는 가족들이 굶는 걸 보고 있을 때이다. 농사가 여러 차례 실패를 하다보니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다.
애들이 책, 학용품도 제대로 챙겨가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걸 볼 때 마다 마음이 미어졌다.
그래도 절대 애들에게 관행농산물을 먹이진 않았다. 내가 직접 지은 농산물 아니면 먹이질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자식들도 그렇고 손자들도 그렇고 아프다는 애들 없이 건강하다. 

Q: 대표님이 생각하는 현재 농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현재 대부분의 농가들이 판매를 할 때 수매로 판매한다. 그런데 수매를 해서 농산물을 측정하는 기준이 외형만 본다.
때깔이 좋은 지, 크기가 적당한지 이런 기준만 정해져있다. 그래서 농민이 돈을 많이 벌려면 이쁘게 키워서 수량만 많이 만들어내면 된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맛있는 농산물을 찾는다. 이렇게 되면 결국 값싼 가격으로 물 밀 듯이 들어오는 외국 농산물과 품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어진다.
농민들이 아무리 싸고 대량으로 농사를 지어도 소비자들이 찾질 않으니 가격은 떨어지고 농민들은 제값 못받고 팔게되고 그러면 결국 농민들이 사라지게 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이다.
이것을 얼른 끊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품질을 올려서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방법 밖에 없다. 수량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맛 좋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해야 소비자들에게 다가 설 수 있다.
 
Q: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쌀로 유명한데 비법이라도
작년 여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받은 식미평가에서 96.3을 기록했다.
특별한 노하우 보다는 일단 욕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평당 모 30주 정도 밖에 심지 않는다. 일반 농가에 비교하면 휑하게 보일 정도이다.
이렇게 듬성듬성 심으면 통풍도 잘 되고 햇볕도 잘 쬐게 돼서 자연의 에너지를 더 많이 받게 된다. 그래서인지 병도 적게 들어 농자재 사용도 줄어든다. 아마 벼가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작년에는 평당 쌀겨 300g에 광합성균 말고는 따로 준 것이 없다. 거의 주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비료를 많이 준다고 쌀이 맛있는 것이 아니다.
비료는 수량만 늘릴 뿐 오히려 식미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자연 그대로의 맛을 내기 위해선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자연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Q: 유기농업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고맙다. 우리들이 간 험난한 길을 따라와 줘서 정말 고맙다.” 친환경농업을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물론 예전보다 친환경자재가 다양하게 많이 나와 있고 기술적으로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관행농사에 비해 많이 공부해야하고 밭에서 고전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선배 농업인들이 기술을 정리해서 후배들에게 잘 알려 줘야하는데 이제 정리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뜻이 있는 후배 농업인들이 많이 나와서 이런 것들을 잘 정리해주면 후세에 더욱 더 유기농업이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위해, 소비자들을 위해, 가족과 스스로를 위해 떳떳한 친환경 농업인이 되어달라.  
 
Q: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내가 지금껏 유기농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비자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농사가 잘 될 때도 있었고 안 될 때도 있었다. 그래도 항상 같은 가격으로 사주시면서 응원해주시는 고정고객분들 덕분에 힘이 들어도 계속 유기농업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런 소비자들이 많이 나와서 우리 친환경농업을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더욱더 소비자들과 신뢰를 쌓도록 노력하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회보에 쓸 사진 한 장을 부탁하자 내 사진보다는 다른 농업인들에게 더 도움이 될 만한 글 한자라도 더 쓰라고 부탁하시는 모습에서 농업과 친환경농업인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작년에 수확하고 아직 남은 쌀이 조금 남아 있으니 혹시나 굶거나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남은 쌀을 보내고 싶다며 꼭 알아봐달라며 부탁하시는 이정모 대표를 보면서 사람이 순박해서 유기농업을 하게 되는지, 유기농업이 사람을 이렇게 순박하게 만드는 건지 궁금증이 일었다.

 <본 내용은 본회 회보 2015년 6월호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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